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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vs 20] 미니멀리즘 웨어, 단순함을 돌이키며

박찬 기자
2020-02-14 11:12:15

[박찬 기자] 많이 본 것 같은데 볼수록 신선하다. 새롭다 못해 창의적이기까지 한 요즘 패션을 보고 1990년대를 떠올렸다면 그건 이상하지 않다. ‘구닥다리 패션’, ‘촌티 나는 패션’ 등 다양한 형용사로 철저히 무시당했던 90년대 패션은 최근 패션계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스타일은 1990년대 패션을 대표한다.

1990년부터 2020년, 다시 말해서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패션계에도 큰 태동이 일어났다. 로고가 급속히 축소됐으며 숄더 라인은 부풀어 올라 과감해졌다. 그 변화는 ‘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더욱 파격적이다. 젠더리스 웨어가 스트리트 브랜드와 맞닿게 되면서 더욱 포괄적이고 영향력 있는 키워드가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강렬하게 느끼고 추억했던 90년대 패션은 새롭게 피어났다.

통 넓은 바지, 거대한 브랜드 시그니처 로고, 오버 핏 재킷 등 이미 우리 일상 패션에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촌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개성 있게 보이는 이유는 90년대 감성 자체가 다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레트로 감성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 느낌을 새롭게 해석한 ‘뉴트로(New+Retro)’가 패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1990년대의 감성을 2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재해석하고 소화하고 있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미니멀리즘 웨어

90s


미니멀리즘, 단순함을 추구하는 예술 및 문화 개념으로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사물의 본질만 남기는 것을 말한다. 패션에서의 미니멀리즘은 단순하고 간결한 룩으로 정의된다. 단색의 내추럴함과 정교한 테일러링, 모던한 감성을 내포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초의 패션계는 미니멀리즘의 확산기를 맞이하며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와 헬무트 랭은 ‘해체와 재창조’를 키워드로 다각적인 테일러링을 이루어냈다. 90년대 힙합 문화를 베이스로 한 스트리트 웨어를 융합한 두 브랜드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으며 그것은 ‘밀레니엄 룩’의 방향성을 제시하게 된다.


물론 두 브랜드의 방향성은 첨예하게 갈라졌다. “나는 상표를 과시하는 옷들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단지 올바른 색상과 형식으로 이루어진 정확한 옷을 창조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하던 헬무트 랭은 자신의 말처럼 곧은 실루엣의 데님 웨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헬무트 랭의 슈트는 시대를 앞서가는 ‘퓨처리즘’ 무드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즐기는 젊음을 함께 표현했다. 그의 새로운 유니폼은 90년대 ‘영 건’들의 개성을 폭발시키고 성장시키기에 충분했다.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방탄조끼를 모티브로 제작한 현대판 ‘테크 웨어’를 공개하며 단순한 형태에서의 심층적 디테일을 꿈꾸기 시작한다. 이른바 ‘펑크 룩과 모던 웨어의 만남’이라고 칭할 만큼 창조적 패션으로 거듭난 것.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의상 디테일만으로는 사실 단순함과는 거리가 멀다. 고급 주문복 라인인 0번(여성복)과 0-10번(남성복)부터 기성복 컬렉션 라인인 1번(여성복)과 10번(남성복), 이전 컬렉션에서 선보인 옷을 꾸준히 재해석하는 4번(여성복)과 14번(남성복), 그리고 액세서리와 신발 라인의 11번과 22번까지 의류 구성만으로도 매우 복잡하고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사실상 미니멀리즘을 자신의 캐릭터에 가장 실험적으로 도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

90년대 초에 세계를 놀라게 했던 ‘타비 슈즈’는 그의 중요한 자산이자 미니멀리즘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제품. 일본식 전통 신발에서 영감 받아 미니멀리즘 룩의 실험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해체주의적 성향으로 가득한 그의 컬렉션은 끝마감 처리가 되지 않은 의류, 노출된 솔기 등 일반 런웨이에서 접할 수 없던 옷의 생산과정의 일부를 그대로 표현했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의상들 뒤에 가려진 노동과정을 파격적으로 보여준 것.


그런 과정 속에서 질 샌더의 출현은 남달랐다. 디테일보다는 패브릭의 품질을 강조하고 퓨어한 이미지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두 브랜드와 분명 달랐다. 80년대 후반부터 컬렉션에서 콘셉트 포지셔닝을 돈독히 한 질 샌더는 오피스 우먼 웨어가 대표적으로 여유로운 실루엣과 양성성에 초점을 맞췄다. 유니섹슈얼의 시대를 선도한 것. 섬유 공학을 공부한 그녀답게 무엇보다도 소재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으며 이는 캐시미어 같은 고급 소재뿐만 아니라 네오프렌 같은 신소재도 활용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찾아볼 수 있다.

20s


그렇다면 미니멀리즘의 시대는 진정 저물었을까. 최근 정통적인 90년대 디자이너 브랜드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뿐만 아니라 캘빈 클라인과 코스 같은 ‘뉴 미니멀리즘’ 브랜드의 색채도 그 방향을 따라가고 있다. 캘빈 클라인의 경우 또 다른 해체주의 파 디자이너 라프시몬스가 부임하면서 유니크한 데님 웨어 섹션을 기획하게 됐고 코스는 ‘타임리스 웨어’와 미니멀리즘을 접목했기 때문.


뉴 미니멀리즘 웨어는 컬렉션 밖에서 더욱 화려하다. 인기 모델 켄달 제너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블루 스트라이프 셔츠를 멋스럽게 소화했다. 기존의 볼륨감 있는 몸매를 부각하기보다는 러프한 유니섹슈얼 웨어로 자유로움을 살린 것.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특유의 견고한 감성과 무심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특히 이전까지 표현했던 추상적 콘셉트와는 다르게 틴에이저들에게 개방적이다.


지지 하디드는 헬무트 랭의 에메랄드 컬러 셋 업으로 비즈니스 웨어를 연출했다. 폭넓은 재킷의 라펠을 통해 볼드한 실루엣을 보여줬으며 블랙 더비 슈즈를 함께 스타일링해 밋밋한 요소를 방지했다. 이는 이제 미니멀리즘 웨어를 더욱 캐주얼하고 가볍게 매칭할 수 있다는 부분이며 테일러링의 미래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


이 시대의 미니멀리즘 컬렉션은 다른 하우스 브랜드들의 일회성 협업 작업들과는 극적으로 다르다.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 사이를 헤매던 밀레니엄 세대에게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201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슈프림, 베이프 등과 같은 심볼 플레이에 능하고 그것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브랜드가 살아남았던 것.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영향력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2014년의 리워크 진, 2016년의 삭스 슈즈, 2018년의 와이드 라펠 재킷 등 스트리트 웨어를 좋아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만한 디자인이 미니멀리즘 웨어와 일맥상통하게 됐다. 다시 말해서, 뉴 미니멀리즘 웨어는 하이엔드와 유스 컬처의 복합적인 산물인 셈. 이제는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이느냐만 남았다. (사진출처: 켄달 제너, 지지 하디드 인스타그램,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헬무트 랭, 질 샌더, 코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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